배두일의 산행 에세이_북한산 형제봉

 

북한산 형제봉 가는 길의 이국적인 '인디언바위' 때론 풍경 한 자락이 천근만근의 우리 마음을 훌쩍 먼먼 나라로 데려가기도 한다.
북한산 형제봉 가는 길의 이국적인 '인디언바위' 때론 풍경 한 자락이 천근만근의 우리 마음을 훌쩍 먼먼 나라로 데려가기도 한다.

 

징징징…괭, 괭, 괭! 작은 골짜기의 아침 공기를 휘저으며 막고장(鼓杖) 장단으로 볶아치는 징 소리가 두둥둥실 나풀거리고, 써늘한 꽃샘바람이 앙상궂은 나목 가지를 휘휘친친 감아 돈다. 자동차들이 씽씽 내달리는 수도 서울의 도로에서 채 십 분도 들어서지 않아 어수선산란한 참에, 꽹꽹 잉잉 막무가내로 울려드는 소리들이 주발대접 들부셔내듯 휘휘 머릿속을 헹군다. 사람의 오감 중에 엄마 뱃속서부터 임종 순간까지 가장 먼저 열리고 늦게 닫히는 청각만큼 영검한 게 없다더니, 산자락 굿당의 자진가락은 덥석 넋을 후려 심심산속으로 내던진다.     

겨울에 치이고 역병에 차인 뒤 찾은 북한산

사뭇 쨍쨍한 봄 볕살이 겨우내 부르튼 나무 등껍질을 어루더듬어 낱낱의 가지를 간질이고 언 땅에 수북한 낙엽까지 쑤석여 봄을 지피느라 여념이 없다. 아직 어디 한구석, 어느 휘추리에 움싹 하나 돋지 않았으나, 산새들도 간간이 재잘재잘 햇살을 거들어 봄맞이 채비를 한다. 지금 빛발 그득한 양달의 빠삭한 낙엽 더미 위에 두 여인이 앉아 굵직한 나무를 등진 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한결 훈훈해진 날씨며 삼월에 접어든 날짜로는 돌이킬 수 없는 봄이건만, 순순히 물러날 줄 모르는 겨울은 응달 구석빼기 곳곳에 도사린 얼음덩이로 앵돌아졌다. 골골샅샅 지난 계절의 뒤끝은 유난히 끈질겨서, 꽃 마중할 날을 손꼽아 이제나저제나 하다 득달같이 근교의 이름난 꽃산으로 몇 번 달려갔음에도, 계곡 빼곡히 골빙하의 최후 방어선을 구축한 겨울 기세에 놀라 뒷걸음치고 말았다. 50년간의 관측 사상 겨울 강수량이 보통 때의 15%도 안 되는 최악의 가뭄이었던 데다 막바지 강추위가 닥친 여파인지, 다른 해보다 열흘도 넘게 봄꽃이 늦다.

 

새봄 첫 꽃을 어떻게든 만나고파 먼 남녘행을 서둘다가, 3년째 횡행하는 코로나 역병이 돌연 꽃샘바람과 편먹고서 오두발광을 부리는 통에 발이 묶였다. 겨울에 치이고 역병에 차인 뒤에야 돌아서면 보이는 뒷산 북한산(北漢山·836m)이 늘 거기 있음이 새삼 고마워졌다. 지척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영 시간이 빠듯할 때나 찾았을 뿐더러, 막상 산에 들어서도 케케묵은 안면 탓에 뭘 봐도 웬만해서는 데면데면했던 게 미안쩍었다. 세상을 뒤집은 횡액을 겪고서 한솥밥 식구의 소중함을 깨달은 심정으로 북한산 중에서도 가까운 형제봉을 새로이 톺아볼 생각이 떠올랐다.     

웬만한 산에선 보기 힘든 산굴의 향연

집채만 한 바위가 가파른 벼랑 중간에 아슬아슬 얹혀 언제라도 와당탕, 바닥으로 떨어질 듯 위태로운데, 아래 틈바귀에 굵직한 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박고 천만근의 무게를 감당하는 모양새다. 바로 옆에는 이미 비스듬히 미끄러져 내려온 바위가 딱 한 사람 들어가 가부좌 틀 작은 석굴을 만들었고, 누군가가 머문 흔적으로 보아 분명 눈앞의 나무를 바라보며 수도나 기도에 정진했으리라. 어쩌면 그가 붙든 화두는 흙도 보이지 않는 바위짬에서 우람한 둥치로 자란 나무, 곧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를 한껏 떠받침으로 더욱 옹골차게 되는 생명의 역설이 아니었을까. 굴 앞의 바위에 쓰여 있는 등선대(登仙臺)란 이름이 마침내 저 나무의 결을 속속들이 헤아리면 능히 신선의 경지에 이르리라는 암시로 읽힌다.

몇 걸음 떼지 않아 나온 널찍한 석굴암 터의 장의자에서 쉬다가 일어서는 나이 지긋한 부부는 아무런 산행 채비를 하지 않은 빈 몸이다. 노부부의 발길이 등산로가 아닌 구석의 바위 쪽으로 향하기에 뭔 일인가 싶어 눈길을 못 떼고 있자니, 한 분이 바위 속으로 쓱 들어간다. 오호,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들 입(入) 자 형상으로 기대어 그 밑에 꽤 큰 석굴을 이룬즉 절묘한 ‘낫 놓고 기역 자’ 아닌가.

차례를 기다려 들어선 굴에는 불상인지 산신인지 신장(神將)인지 모르도록 빛바랜 채색 그림이 고분 벽화처럼 돌벽에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여기는 오랫동안 기도처였다. 형제봉으로 향하는 이 길을 두어 번 와서 바위가 많은 줄은 알았으되, 웬만한 산에선 보기 힘든 산굴이 연이어 나타나는 줄을 몰랐다.         

꼭대기 다락마루에서 만난 사면팔방 산천물색

한바탕 된비알을 치오른 고개에서 널찍한 능선 길로 잰걸음을 놓다가, 앞선 산객이 오른쪽 곁길로 들어서기에 호기심으로 따라붙자 이내 나타난 숲속의 풍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미끈한 삼각형으로 우뚝한 회색의 푸석바위에 깎아 놓은 계단이 줄느런하고 그 위 푸르른 하늘에 까마귀 무리가 날갯짓을 퍼드덕거리매, 규모야 어림 반 푼어치도 없을지언정 분위기만은 열대 밀림 속에 숨어 있는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신전 그대로다. 바위 한가운데 한 줄의 계단이 인디언 추장이나 전사의 깃털 모자를 닮았다는 ‘인디언바위’로 직감이 되며, 땅거죽을 두리번대던 눈길은 이미 먼먼 이국의 하늘을 맴돈다.

몸뚱이를 낚아채려는 바람에 맞서 뒤뚝뒤뚝 네발로 기면서도 줄지어 하나둘 계단을 오르는 건, 피라미드 위에서 보이는 사면팔방 산천물색이 못내 궁금한 때문이다. 북쪽 하늘 위로 솟구친 작은형제봉(461m)과 큰형제봉(463m)의 능선이 뿔뚝뿔뚝하고, 오른쪽으로 북한산의 용마루 주릉과 서까래 칼바위능선이 허연 바위 장벽으로 너울지며, 남쪽엔 연무(煙霧) 자욱이 바람 잘 날 없는 수도의 도심이 한눈에 담긴다.

휘, 한 바퀴 돈 뒤에야 정작 명물은 바로 발밑임을 눈치 챘으니, 툭 불거진 돌부리와 겹으로 얹힌 돌이 사방으로 난간을 이룬 꼭대기 다락마루가 아늑하기 그지없다. 키 작은 억새와 다보록한 싸리나무가 운치까지 더해 주므로, 그냥 이대로 똬리 튼 채 해넘이를 맞고 달을 벗 삼다가 해돋이까지 마중하면 이 티끌세상에 더한 기쁨이 있을까.         

돌과 바람과 하늘의 숨결을 들이킬 산

쏴쏴, 물결치는 솔바람 속으로 이어지는 평평탄탄한 흙길은 조선 왕실이 심혈을 기울여 보살핀 길목으로, 상장봉에서 가지 친 한북정맥의 지맥이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를 거쳐 보현봉으로 뻗은 뒤 다시 남쪽으로 갈라져 형제봉을 넘어 한양의 주산(主山) 북악산에 닿는 접점이다. 문제는 형제봉까지 달려온 백두대간의 정기가 막힘없이 북악산으로 흐르기엔 여기 잘루목이 너무 좁직한 데다 흙더미가 연신 유실된다는 거였다. 나라에서는 해마다 흙을 메우고 떼를 입혀야 하는 통에 보토현(補土峴)이라 한즉, 그 덕에 지금 잠시나마 발길이 호사를 누린다.

구불텅한 석간송(石間松)들이 바람을 막아 주는 형제봉 능선의 너럭바위에 아이들까지 어우러진 한 가족이 둘러앉아 속살속살하는 모습은 정겨운 산수화, 아니 모두 마스크를 걸쳤으매 다시없을 풍속도 한 폭이다. 어떡하다 요 작은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험악한 코로나 구렁텅에 빠진 때에, 부부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빈손 맨몸으로도 스스럼없이 깃들어 돌과 바람과 하늘의 숨결을 들이킬 산은 얼마나 든든한 처방인가. 한갓 미신으로 치부하던 굿도 따지고 보면, 저마다 헐수할수없는 속수무책의 궁지에서 천지운기(天地運氣)의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는 몸부림인걸.

꽤나 비탈지고 돌부리가 쀼쭉쀼쭉한 너덜겅에 남녀가 손을 잡아 낑낑거리는데, 청년은 등산 복장을 갖추었으나 아가씨는 평복에 운동화 차림이다. 서툴고 어설퍼도 막막한 험지를 함께 헤쳐 가는 한 발 한 걸음의 풋풋함이 긴 겨울을 보내고 맞는 새봄처럼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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