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계 기린아들의 영원한 후원자

 

지난 6월 27일 한국히말라얀클럽 오인환 회장 장례식에 다녀왔다. 양정산악회, 동국[대]산악회 회원으로서 한국 히말라야 진출의 선구자였던 분이다. 

 

오인환 회장은 양정산악회, 동국[대]산악회 회원으로서 한국 히말라야 진출의 선구자였던 분이다. 1984/85 양정산악회의 동계 에베레스트 대장이었다.
오인환 회장은 양정산악회, 동국[대]산악회 회원으로서 한국 히말라야 진출의 선구자였던 분이다. 1984/85 양정산악회의 동계 에베레스트 대장이었다.

 

1984/85년 양정산악회의 동계 에베레스트 대장이었다. 이 때 KBS가 1억 원이나 되는 거액의 원정 비용을 댔는데 이는 당시 오회장이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히말라야 원정 조직가였기 때문이었다. 1977년 에베레스트의 고상돈이 1979년 데날리에서 죽은 이후 누구도 에베레스트를 밟은 자가 없었으니 KBS 같은 유력 스폰서는 가능성밖에 없는 잠재적 등정자보다 조직가에게 베팅을 했던 것이다.     

그는 70년대 한국 히말라야 등반계를 풍미했던 <집념의 마나슬루> 김정섭 대장이 1976년의 3차 원정 실패를 끝으로 산악계에서 물러나면서 ‘호랑이 떠난 산중의 토(兎)선생’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대학 3학년이던 1967년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다녀왔고 이듬해 알프스 몽블랑을 올랐으며 1969년 김정섭과 츄렌히말 정찰을 다녀왔으니 당시로서는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는 산악계의 기린아였다.     

40대 이후로는 ‘기린아들의 후원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이런 뜻에서 1988년에 만든 것이 한국히말라얀클럽. 하지만 박철암, 고인경, 문영식 등 원로들을 회장으로 모시면서 자신은 언제나 뒤에 서있다가 창립 20년만인 2008년 비로소 회장이 되었다.     

히말라얀클럽의 등반은 당시 최고의 산악인 허영호와 함께 많이 했다. 1991년의 초오유·시샤팡마, 1993년의 한국초모랑마원정대를 대장으로 이끌었는바 이때 허영호는 저 유명한 트래버스 등반-북면에서 남면으로의 횡단에 성공했다. 이후 2017년 에베레스트 아리랑원정대까지 함께했으니 두 사람의 우의는 참으로 각별했다 할 것이다. 그래서 EBS는 2015년 2월 방송한 <만나고 싶었습니다 산악인 허영호편>의 제목을 “날개를 달아준 영원한 나의 대장”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엄홍길도 오회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별다른 직업도 없이 히말라야만 찾던 그를 고인경씨가 운영하던 파고다어학원 홍보부장으로 천거, 8000m 등정 레이스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한 이도 오인환이었으며 레이스 후반부의 박영석에게 LG화재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붙여준 것도 그였다. 히말라얀클럽 부회장이던 LG화재 고문변호사 성순제씨를 통해서였으니 오회장은 8000m 14봉 등정자를 두 명이나 탄생시킨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할 것이다.     

서유여행사 대표였던 그가 1984년 한국대학산악연맹 초오유 정찰등반대를 가이드함으로써 대학산악부원들의 히말라야 진출을 부채질한 것도 커다란 공헌이었다. 이때 멤버 중에, 나중에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되는 인하대학교 천병태, 광운대 캉구루와 바기라티원정대 대장 배승렬, 전주 개척산악회의 이동호 등 77학번 3인방이 있었는바 전북 지역 히말라야 붐의 주역 이동호 덕분에 한왕룡이나 진재창 같은 걸출한 산악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양정산악회, 동국[대]산악회 선후배들과 한국히말라얀클럽 회원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고인 덕에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꼭 와야할 사람인데 보이지 않은 이도 있었다. 그 중에는 이미 저세상으로 갔기에 못 오는 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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