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LIG손해보험 회장 구자준

 

3년 전, ‘히말라야여행사’의 최영국 사장으로부터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 부부를 비롯한 재계 회장 부부 여섯 쌍이 돌로미티 산행을 할 것이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인수봉과 선인봉에서 자주 만났던, ‘반트클럽’의 회장이기도 한 최사장의 반가운 제안에 산행 일정과 숙소를 잡아주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2년 반이 지난 이번 6월 22일부터 7월 2일에야 이들 일행과 같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글 사진 · 임덕용(꿈속의 알프스 등산학교)

강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특유의 미소를 날리는 구자준 회장.
강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특유의 미소를 날리는 구자준 회장.

 

박영석과 오은선의 원정 등반을 후원했던 구회장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싶지 않아 그에 대한 검색을 하거나 연구를 하지 않고 사전 정보 없이 생 얼굴로 그를 만나기로 했다. 36년간 이탈리아에 살면서 후배들의 원정을 후원하신 분이란 정도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떤 원정을 어떻게, 얼마나, 왜 후원했는지도 사전에 알고 싶지 않았다. 단지 한국을 찾을 때마다 여러 잡지나 기사에서 스쳐지나간 기억만이 있는 그였는데, 오신다니 자못 궁금했다.

그를 이리저리 떠보거나 시험해보지도 않기로 했다. 그저 순수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싶었을 뿐, 그가 얼마나 산을 사랑하는지, 순수하고 진정한 산악인인지를 재보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내가 한국에 살며 산악 활동을 계속했다면 원정경비 동냥을 위해 굽신거리며 만나야 할 상대였기 때문이다. 일행이 도착하는 베니스 공항이나 베니스 호텔로 의전성 마중도 가지 않았고, 우리 집 바로 위의 볼자노(Bolzano)고성 호텔에 도착하고서야 그를 만났다.     

 

친꿰 또리 바위에서 아내 이영희 여사가 위험할까봐 구자준 회장이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 젊은 남자의 프로포즈를 떠올리게 했다.
친꿰 또리 바위에서 아내 이영희 여사가 위험할까봐 구자준 회장이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 젊은 남자의 프로포즈를 떠올리게 했다.

 

내 편견을 깨버린 ‘인간 구자준’

일행과 버스에서 내린 구회장은(사실 누가 구회장인지 매우 궁금했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며 “임대장님!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예상치 못한 기습 카운터 펀치에 한 방 맞았다. 사진이라도 검색해 보았다면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일행에게 나를 소개했다. “우리 산행을 가이드해주실 임덕용 대장….”

 

꼴 디 롯씨에서 마르몰라다로 횡단 등반하는 일행. 거대한 암봉을 배경으로 야생화가 흐드러졌다.
꼴 디 롯씨에서 마르몰라다로 횡단 등반하는 일행. 거대한 암봉을 배경으로 야생화가 흐드러졌다.

 

그리고는 자신과 아내의 대형 트렁크를 손수 나르기 시작했다. 1230년대 만들어진 볼자노고성 호텔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객실까지 가기 위해 급경사의 수많은 좁은 달팽이형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자신과 아내의 가방과 배낭을 옮기기 위해 몇 번이고 직접 오르내렸다. 두 번째 카운터 펀치를 맞고 KO되기 직전이었다. 편견과 선입견은 우리 인간이 살면서 누구나 공동으로 가지고 산다. 편견은 선입견에서 시작되고, 편견 때문에 선입견이 생긴다. 국내 재벌 기업 회장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은 한방에 깨져버렸다. 갑자기 ‘인간 구자준’ 그가 더욱 궁금해졌다.

볼자노에서 이틀을 머무는 동안 발 푸네스(Val Funes) 산행을 하며 오들로 산군을 걸었다. 그동안 구회장을 가능한 멀리서 관찰만 했다. 이탈리아 공인 스노우보드 선생이며 트레킹 가이드이자 알파인 가이드가 된 24세의 베네데타(Benedeta)가 선두에서 팀을 이끌고, 최영국 사장이 중간에, 나는 후미에서 산행했다. 첫날 산행으로는 조금 길게 3시간 가까이 오른 후 2시간 이상을 걸어서 내려왔다. 일행 중에는 등산화를 처음 신고 처음으로 산 배낭을 멘 이도 있었다. 국내 재계의 대표적인 회장 부부들이었으니 사실 그들의 산행에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청계산은 올라보았다는 이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항상 마지막에서 일행을 챙기는 구회장. 멀리서 비구름이 몰려들고 바람도 매우 거세지고 있었다.
항상 마지막에서 일행을 챙기는 구회장. 멀리서 비구름이 몰려들고 바람도 매우 거세지고 있었다.

 

산행 첫날 발 푸네스에서 산장에 오른 후 기념촬영을 했다. 가운데 모자 안 쓴 사람이 구회장이고 바로 앞이 이영희 여사.
산행 첫날 발 푸네스에서 산장에 오른 후 기념촬영을 했다. 가운데 모자 안 쓴 사람이 구회장이고 바로 앞이 이영희 여사.

 

멀리서 관찰한 구회장은 생각보다 무척 잘 걸었다. 수시로 행렬의 선두와 끝을 오가며 아내 이영희 여사를 에스코트하곤 했다. 아내가 덥다면 옷을 벗겨주고 춥다면 다시 입혀주는 자상함도 보였다. 보통 아내에게 무뚝뚝한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남편이 아니었다. 몸에 밴 행위였다. 조금은 삐딱한 눈과 사고로 그를 힐끗힐끗 보는 내가 점점 실망스러워지고 있었다. ‘이러면 지는데…’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가 지고 이기고 승부를 보려고 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뜨레 치메를 돌때 날씨가 급변하자 서둘러 아내 배낭을 자신의 큰 배낭 속에 갈무리하고 바람을 피하는 곳에서 손이 빠르게 배낭커버를 덮어씌우고는 아내의 방수 재킷도 챙겨주고 있었다. 익숙한 동작이었으며 몸이 기억하는 자동설정형 행위였다.     

 

세체다의 상어지느러미 같은 거대한 침봉은 발 푸네스에서 보이는 오들로 암군이다.
세체다의 상어지느러미 같은 거대한 침봉은 발 푸네스에서 보이는 오들로 암군이다.

 

“올해 10월, 영석이 10주기 기념등반 가려고요.”

라인홀트 메스너의 산악 박물관 MMM에서는 등반사와 여러 예술품을 일행에게 진지하게 설명해주고, 메스너와 나만의 숱한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알프스 등반사에서 히말라야 등반사가 모두 나왔고 알피니즘의 시작과 과정, 현재를 박물관을 통해 자랑질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앉는 기회가 있었고, 구회장이 먼저 영석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어쩜 나를 산악인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여겨졌다. 아니 어쩜 ‘큰 형이 막내 동생을 다 아는데 동생이 큰형에게 무슨 폼을 잡고 있느냐’는 경고와 충고였는지도 모른다.

 

케이블카 안에서 보이는 돌로미티 최고봉 마르몰라다. 7월 3일, 정상부 세락이 무너져 6명 사망, 8명 중상, 10명이 실종된 상태다.
케이블카 안에서 보이는 돌로미티 최고봉 마르몰라다. 7월 3일, 정상부 세락이 무너져 6명 사망, 8명 중상, 10명이 실종된 상태다.

 

“금년 10월이 영석이 10주기인데 기념등반 가려고 준비 중이에요.” 마지막 KO펀치를 아주 세게 맞았다. 뜬금없이 그가 던진 거의 충격적인 말이었다. “아! 네에….” 그리고 박영석과 얽힌 많은 히말라야 원정 등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쩜 내가 그럴 기회를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이야기가 깊어 갈 때 갑자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영석이에게 후원하셨어요?” “내가 LG화재에서 근무하는데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잘 나가고 유명한 사람들보다 힘들고 가난하지만 자질과 능력이 있고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을 후원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현대무용 하는 사람들을 후원했는데, 2001년에 영석이가 K2에 도전한다며 찾아와서 원정대 대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의 불타는 듯한 맑은 눈을 보니 ‘아! 이게 바로 내가 돕고 후원하야 할 사람들이구나’를 깨달은 거지요. 근데 제가 뭐 산을 아나요. 그래서 산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오은선을 박영석에게 소개하며 키워달라는 차원에서 은선이를 제 비서처럼 대동시키고 원정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발토르 방하에서 내려오며 발톱 두개가 빠졌답니다. 허허허…”

 

친꿰 또리의 1차 세계대전 격전지 참호 안에서 보이는 토파나.
친꿰 또리의 1차 세계대전 격전지 참호 안에서 보이는 토파나.

 

알피니스트들만의 산악 훈장을 받은 셈이다. 몸의 한 부분을 헌납하면서 배우는 산행과 고행은 티벳 스님들의 사마타 수행 비로자나 칠지좌법의 길에 들어선 것에 다름 아니다. 1999년, 박영석·오은선 등 산악인들을 만나면서 도전과 극복이 있는 탐험 세계에 빠져들었다. 비슷한 시기 마라톤에도 입문해 풀코스를 여러 번 완주했다. 마라톤 시작은 새로 부임한 회사의 팀워크를 만들기 위한 차원의 훈련이었다면 산행은 동시다발적 사건이고 대형 사고가 되었다.     

 

숱한 도전을 통해 축적된 경험, 경영철학에 반영

구회장은 2001년 박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K2봉 등반에 참가해 해발 6,000m까지 올랐고, 2004년에 남극, 2005년에는 북극 탐험에도 동행했다. 베이스캠프에서 엄청난 눈보라를 맞아 위태로운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위험한 것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도전에 위험이 없을 수 없지만 대부분 사고는 기본을 지키지 않고, 욕심이 앞서 생기는 인재(人災)’라 생각하며 이겨냈다. 머리가 깨질 듯한 고산병 증세, 온 몸을 날려버릴 듯한 강풍과 폭풍우, 혹한을 견뎌내며 한 발 한 발 전진하면서 인내심, 자신감, 리더십 등을 깨닫게 됐고,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한 것은 그의 경영 철학에도 반영되었다.

 

파트론 벽 아래를 지나는 구회장. 여러 차례의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산행 이력이 말해주듯 그의 걸음은 산뜻하고 가벼웠다.
파트론 벽 아래를 지나는 구회장. 여러 차례의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산행 이력이 말해주듯 그의 걸음은 산뜻하고 가벼웠다.

 

“이현조, 오희준이 아시지요?” 내가 아무리 36년을 이국에서 산다고 한들 왜 그들을 모르겠는가!  “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정말 아까운 후배들이지요.”“현조와 희준이가 에베레스트 남벽에 헹거형 텐트를 친 것을 망원경으로 보았어요. 무전 통화를 하며 그들을 격려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부처님 같이 작은 그의 눈이 진동으로 살짝 흔들렸다.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구회장은 산에서 조난을 당해 거대한 히말라야가 되어버린 영석이와 여러 산악인들을 생각하고, 나는 1981년 카라코람 히말라야에서 스스로 로프를 풀고 산화한 형을 생각하며 대화는 멈추었다. 형이 자일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풀어버린 로프의 한 끝이 내 손을 스쳐 수 천 미터의 히말라야 벽으로 출렁하며 떨어지던 그 순간 전해지던 손끝 감각이 아직도 내 손에 살아 있다. 현조와 희준의 희생 후 영석이 팀은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오르티세이(Ortisei)의 세체다(Seceda)에서 꼴 라이져(Col Raiser)까지 종주 등반을 하고 장미공원 로젠가르텐(Rosengarten)의 속살 등반을 위해 베네데타의 차를 타고 가르데챠(Gardeccia)까지 오른 후 급경사의 프린체스 산장까지 진행하는 6시간이 넘는 산행을 했다. 알타 비아 2의 황금 등산로인 마르몰라다를 보며 하는 횡단 산행도 했고, 하루에 친꿰 또리와 라가주오이, 돌로미티의 상징인 뜨레 치메 라바레도까지 산행했다. 다음날 하루 종일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린다기에 2일치 등반 일정을 하루에 몰아 해낸 것이다.

 

돌로미티의 심볼인 뜨레 치메 라바레도에서. 오른쪽부터 최영국 사장, 필자, 이영희 여사, 구자준 회장.
돌로미티의 심볼인 뜨레 치메 라바레도에서. 오른쪽부터 최영국 사장, 필자, 이영희 여사, 구자준 회장.

 

그렇게 며칠간 지켜본 구회장은 사랑의 대상이 되어갔다. 관찰, 관심, 애정, 사랑, 존경, 존엄의 단계로 간다고 하지 않던가. 이유는 그가 매번 버스 이동시 항상 제일 마지막 자리에 앉아서 분위기 메이커로 봉사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식사 자리에서 좌중을 웃기던 일화 하나. 갑자기 그가 중국어를 시작했다. “초이쉬쇼웅 마누아라하 이라하야! 어떠가으아숴 또우쏴우하!” 무슨 뜻이냐고 주변에서 묻자 “최수종의 마누라는 하희라, 어디 가서 똥싸”란다. 눈물을 훔치며 웃어야 했다.

글을 쓰기 위해 히말라야여행사 최영국 사장에게 구회장에 대해 물어보니 단 한마디로 답한다. “호탕하시다!” 2001년 K2 원정대, 2003년 북극점 도보 탐험대, 2004년 남극점 도보 탐험에 이어 2004년 말 7대륙 최고봉 등정 길에 나선 오은선의 빈슨매시프 등반에도 참가, 2005년 북극점 도보 탐험대에서는 원정대장을 맡았다. 남극 2회, 북극 2회에 히말라야 20회 이상의 원정을 경험해낸 탐험가이자 산악인이 된 셈이다.     

 

친꿰 또리와 멀리 암군의실루엣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했다.
친꿰 또리와 멀리 암군의실루엣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했다.

 

스스로 낮춰 모든 것을 함께 했다

대기업 회장이 20회 이상 히말라야 원정대 베이스캠프까지 동행하며 대원들을 격려했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기업 회장이면서 일반인으로 원정에 합류하기 위해 쏟은 희생과 노력은 산악인들의 그것에 비해 작게 쳐서 두 배라면 40회 이상 원정을 한 셈이고, 대기업 총수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 시간을 쪼개서 간 것이어서 10배는 더 힘들었을 테니 200회 이상의 히말라야 원정이라고 하면 너무 과한 평가일까?

우리 산악계의 버팀돌 세 분이 계시다. 초창기 개척 선배님들을 제외하고 최근 등반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다. 왜 알프스 3대 북벽이 있고, 왜 3인방이 있는가! 한 명을 논하면 신격화 된다. 두 명을 이야기하면 경쟁 구도가 된다. 그런데 셋을 논하면 삼지점이 되어 안정적이며 분배가 되기 때문에 알프스 1대 북벽이 없고 1인은 독재가 된다.

 

오르티세이에서 뜨레 치메 라바레도를 배경으로 선 구자준 회장 부부.
오르티세이에서 뜨레 치메 라바레도를 배경으로 선 구자준 회장 부부.

 

이태리 알파인 가이드 베네데타와 필자를 두 팔로 껴안은 구회장.
이태리 알파인 가이드 베네데타와 필자를 두 팔로 껴안은 구회장.

 

한 명은 우리 산악계의 대들보이며 행정적인 사람이라면, 한 사람은 제조업으로 성공해서 후배들의 생계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감히 삼인방에 구자준 회장을 올린다면 누군가 이의를 제기할까! 그가 재정적 도움으로 후배들의 원정을 후원해서가 아니다. 그가 스스로 몸을 낮추고 후배들과 같은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작전 회의를 하며 응원한 노력과 희생은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등반을 하다 보면 항상 우리의 그림자가 우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때가 많다. 36년간 티롤 알프스와 돌로미티에서 등반을 하고 있는 나의 경우 벽에 비친, 외로움에 쩐 내 그림자는 바로 꿈에도 그리운 한국의 내 자일파트너다. 벽과 태양과 내 위치에 따라 그림자는 크거나 작게 나를 따르고 지켜준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말이 쉽지 참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책임을 다하는 권력자나 부자를 가끔 볼 때 우리는 진심으로 그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구회장이 지금까지 산악계에 보여준 희생과 노력이 깃든 응원이야말로 아름다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틀림없다. 나는 함께 했던 며칠 동안 기가 막히게 숙성된 된장으로 만든 어머니의 얼갈이 된장국처럼, 어머니의 익숙하고 깊은 손맛에서 나온 잘 구워진 감자전처럼 우리 곁에서 그립고 친근한 그림자로 함께 한 구자준을 만났다.

나에게 그림자는 음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고국의 그리운 악우들과 그들과 함께였던 숱한 산행의 추억에 다름 아니다. 산악인 구자준은 어느 누가 만들어준 그림자보다 작지 않았다. 어쩌면 故 박영석의 그림자보다 더 크게 건너편 산에도 비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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